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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 3부작에서 섹슈얼리티 착즙하기: 백합, 트랜스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

 

목차

1. 서론

2. 백합 쓰지 마세요: 백합 논쟁과 섹슈얼리티

3. 성별 규범을 넘어서기: 트랜스젠더와 섹슈얼리티

4. 결론

 

 

1. 서론: 프로파간다 시리즈와 섹슈얼리티

 

본문에서 다룰 작품은 브릿G에서 연재된 비이 작가의 프로파간다 로맨스 웹소설 연작, <프로파간다에서 백합 착즙하기>, <프로파간다에서 부치 파이트 착즙하기>, 그리고 <프로파간다에서 화장실 로맨스 착즙하기>. (이하 프로파간다 3부작으로 약칭하며, 연재 순서에 따라 프로파간다 1,’ ‘프로파간다 2,’ ‘프로파간다 3으로 지칭한다) 여기서 착즙이란 우리가 과일이나 채소 등에서 즙을 짜내듯이, 어떤 컨텐츠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의 매력을 짜내어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이 글 역시 프로파간다 착즙 시리즈에 대한 착즙인 셈이다.

간단히 소개하면, 프로파간다 3부작은 퀴어 로맨스 소설이다. 1편과 2편에서는 레즈비언 바에서 와 만난 꼬마 부치사이의 로맨스가 펼쳐지며, 3편에서는 레즈비언 바 주인장인 ‘B’가 트랜스젠더 은수와 썸을 탄다.

이 작품들을 착즙, 아니 이들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은, 이들이 재미있는 소설임과 동시에 무척 절박할 정도로 시의적절한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로파간다 3부작에서 드러나는 시의적절함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이야기될 수 있다. 하나는 여성 서사와 백합 장르에 대한 논쟁이며, 다른 하나는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논쟁이다. 이 주제들을 공통으로 묶을 수 있는 테마는 섹슈얼리티인데, 본문에서 나는 이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이 프로파간다 소설 시리즈에 어떻게 핵심적으로 자리잡고 또 배치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저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는지를 분석하려 한다.

먼저 섹슈얼리티sexuality 개념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둬야겠다. 섹슈얼리티는 좁은 사전적 의미로는 한국어로 성애性愛로 번역되는, 성적인 애정과 욕망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섹슈얼리티는 실상 이런 국어사전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이기도 하다. 섹슈얼리티 이론에서 이 개념은 성역할, 성행위, 성적 감수성, 성적 지향, 성적 환상과 정체성을 정의하고 생산하는 모든 영역”(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5: 162)을 지칭한다. 이 용어는 신체적 성관계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섹스sex보다 넓은 범위를 나타내기 위해 등장했다. 그러나 점차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성차sex/gender가 섹슈얼리티 자체와 무척 복잡한 연관을 맺고 있음이 드러난다. 즉 섹슈얼리티는 사회 안에서 성적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 요소들이 배치되는 전체적인 구조 지형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 구조 자체가 특정한 섹슈얼리티를 우선시하며 형성된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어떤 배제적 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다양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 논쟁점들이 본문 2장과 3장에서 구체화될 것이다. 퀴어들의 섹슈얼리티가 백합 장르를 비롯하여 퀴어 로맨스들에서 의도적으로 삭제당하는 현상은 이 사회의 섹슈얼리티가 이성애 중심적으로 짜여져 있음을 드러낸다(2). 다른 한편 트랜스젠더가 시스젠더뿐만 아니라 퀴어 커뮤니티에서조차 문제적 대상으로 간주되며 배제되어 온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섹슈얼리티의 지형 속에서 섹스/젠더를 고정적으로 배치해 왔다는 점을 암시한다(3).

 

2. 백합 쓰지 마세요: 백합 논쟁과 섹슈얼리티

 

프로파간다 1편과 2편의 핵심 서사는 레즈비언인 ’(3편에서는 ‘I’로 등장)와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주장하는 꼬마 부치사이에서 일어나는 로맨스이다. 비이 작가의 이 설정은 김휘빈 작가의 브릿G 게재 소설 <백합쓰지마세요>를 떠올리게 한다. <백합쓰지마세요>는 능구렁이 같은 레즈비언 노련과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주장하는 신입사이의 대화를 다룬 짧은 소설이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백합쓰지마세요>는 온라인상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백합이라는 용어 및 장르에 대한 논쟁을 반영한다. 2장에서 나는 이 백합 장르 논쟁이 어떤 것인지 간략히 살펴보고, 백합 장르에서 섹슈얼리티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왜 비판받게 되는지를 퀴어 섹슈얼리티의 제거라는 맥락에서 규정한다. 여기에 내재되어 있는 강력한 이성애중심주의라는 섹슈얼리티 구도를 조명하며, 이와 관련된 대중매체에서의 퀴어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할 것이다.

지난 1월 모 만화 칼럼니스트는 한겨레 ESC 칼럼에 기고한 글에서, ‘백합 장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여성 간의 우정과 유대에 천착하는 판타지 픽션장르. 레즈비언 장르와는 구분됨.”[1] 다시 말해 여성 간의 섹슈얼한 관계를 다루는 장르인 레즈물, 그보다 더 포괄적인 관계를 다루는 백합물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의 규정이 지난 해 9월 비평 사이트인 텍스트릿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어느 평론가가 올린 애니메이션 리뷰 글에서 백합물은 여학생의 동성간 순정을 묘사하는 작품군인데에 반해, 레즈물은 그 명칭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넓은 의미에서 레즈비언간의 동성애를 묘사하는 작품”[2]이라는 규정이 제시된다. 이러한 규정들에 대해 백합 소설/만화 작가들이 항의하며 온라인에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는데, 이 반박들은 백합 장르가 이미 성애적 관계를 포함하고 있기에 레즈물이라는 별도의 구분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뿐더러, 이 구분 자체가 성애의 폭을 협소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3]

그런데 이와 같은 백합-레즈 장르 구분 시도 외에, 또다른 이유에서 백합용어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다.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이라 불리는 이 관점은 백합이라는 장르가 여성의 순결성을 강조하는, ‘빻은장르라는 이유에서 이 명칭을 거부한다.

 

- 백합 쓰지 마세요.

- ?

노련은 라떼를 젓던 스트로우에서 시선을 떼고 신참을 쳐다보았다.

- 빻은 말이에요.

- 무슨 소리야?

- 백합은 여성의 순결성을 강조하는 말이라고요.

<백합쓰지마세요>

 

백합이라는 꽃 자체가 순결이라는 꽃말을 지녔다는 점 역시 이러한 관점의 근거로 쓰인다. 그런데 이처럼 백합이라는 말이 빻았다, 단지 이 장르 제목을 GL(Girl’s Love)로 바꾸기만 하면 해결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의 관점에서 백합 장르의 이러한 빻음은 단지 용어의 차원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여성을 (남성적 관점에서) 성애화하며 코르셋을 씌우고 있다는 문제까지 포함한다.

 

첫 데이트에서 꼬마 부치는 백합은 빻았으니 탈코 GL’을 파야 한다면서 대뜸 내게 그림 한 장을 들이밀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허우대가 좋은 남자 둘뿐이었다.

- 이게 어딜 봐서 GL? (중략) 요새는 이런 게 유행이야? 남자를 그려놓고 여자라고 하는 게?

- 새로운 디폴트를 설정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왜 여자 하면 하늘하늘한 치마랑 긴 머리를 떠올려야 하는데요? 이걸 봐요. 성기만 빼놓고는 이상적으로 여기는 남성상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프로파간다에서 백합 착즙하기>

 

더욱이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의 관점에서 탈코르셋은 단지 자신의 신체를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애초에 개인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차원의 규정을 하나의 정치적 이념으로 보고 있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성애 자체를 탈각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섹슈얼리티 담론에서 모든 성행위 및 성애에 대한 묘사는 악마화되며 오직 추한 것으로만 묘사된다.(루빈, 2015: 339)

 

- 이래서 여성 간 성애는 안 된다는 거였는데.

- H...

- 페미니즘인지, 퀴어인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해. 확실히 하란 말이야.

<프로파간다에서 백합 착즙하기>

 

- 너 요새 보빔물같은 거 잘만 보더라? 그게 그렇게 좋았어?

- 그딴 거나 보니까 성적 취향이 이상해지는 거지! 그 더러운 년 때문에!

- 무슨 말을 그딴 식으로 해!

<프로파간다에서 백합 착즙하기>

 

- 나도 너 좋아했어, 진심으로. 그렇지만 우리는 정치적 레즈비언이니까. 가부장제 억압의 산물인 여성 간 성애 대신 연대를 택해야 하니까, 혼자서 마음을 접었는데!

- H, 기다려. 지금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 따라가겠어.

-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호랑말코 같은 년이 갑자기 끼어들어서는! 널 채가는 걸 뻔히 보고만 있어야 했는데! 이러니 내 속이 안 타들어가고 배겨?

- , 너 지금 나보고 호랑말코라고 했어?

- 언니, 잠깐만요.

<프로파간다에서 부치 파이트 착즙하기>

 

여기서 백합이라는 장르의 명칭이 정말 여혐인지, 혹은 레즈물과 장르적으로 구분될만큼의 근거가 있는지 여부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본문의 주제는 백합 장르에 대한 이 논쟁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소위 백합-레즈구분은 백합물 장르에서 성애의 문제를 구분하여 별도의 영역으로 다루고자 시도한다면, ‘백합쓰지마세요를 주장하는 이들은 백합물에서 여성의 성애를 제거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이 두 관점 모두 백합물이라는 장르에서 여성 간 관계로부터 성애의 측면을 삭제하고 있다. 그 결과 어느 관점에서든, 여성 간의 관계는 성애와 연대라는 이분법적인 연관만이 남는다. 그 사이에 있는 어떤 관계도 장르적으로나 운동적으로나 허용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백합 장르의 탈성애화 시도는 한국 사회가 매체 속에서 퀴어들의 섹슈얼리티를 지워왔던 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4] 매체에서 재현되고 있는 퀴어들의 섹슈얼리티는 오직 특수하고 예외적인 것으로서만 취급되도록 요구받는다. 매체에서 자신들의 섹슈얼리티를 강제로 삭제당한 퀴어들에게, 백합 장르의 탈성애화 시도는 단순한 장르 규정의 문제 이상으로 다가온다. 이 시도는 장르 내의 인물들이 이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디폴트로 삼을 때 설득력을 가지며,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장르 내의 퀴어성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이처럼 퀴어들의 섹슈얼리티는 진짜가 아니며 결국 주류 이성애 관계만이 진짜라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을 때, 이는 퀴어 정체성 재현에 대한 왜곡이자(허주영, 2019: 30), 동시에 소수자들의 자기규정에 있어서의 왜곡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기규정 역시 매체를 통해 반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국 사회가 퀴어들의 성애적 재현을 얼마나 열심히 지우고 있는지 잠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매체 제작자들과 평론가들은 심지어 가장 노골적인 퀴어 섹슈얼리티 매체에 대해서조차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말끔히 지워버리곤 한다. 가령 영화 <캐롤>에 대한 모 평론가의 평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동성애자인 캐롤과 테레즈 사이의 관계를 그저 사랑 이야기인데 하필 두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여자였을 뿐이라는 어이없는 방식으로 해석했던 이 평론가는, 어떻게든 성소수자들 사이의 섹슈얼리티를 진정한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이다. 또한 퀴어영화 <메소드>의 감독은 정작 퀴어 소재에 대해 잘 모른다며, 두 사람의 멜로를 찍고 싶었을 뿐 퀴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라는 황당한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5]

최근 퀴어들의 섹슈얼리티를 매체에서 지우는 방식은 퀴어 베이팅Queer Baiting[6]이라는 다소 은밀한 방식을 취한다. 퀴어 베이팅으로서 서사 초반에 삽입된 동성애 코드는 일종의 금기로서 인물들 사이의 긴장관계를 높이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되다가 결국 이성애 관계로 전환되는데, 이는 결국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진정한 섹슈얼리티 관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활용된다. 한국 사회에서 유통되는 매체들은 브로맨스걸크러쉬같은 명칭으로 작품의 섹슈얼리티 구도를 중화하며 이를 우정이나 케미 따위의 말로 치장한다. 결국 매체에서 퀴어의 존재는 점점 더 비가시화되며, 더욱이 퀴어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된다. 이로써 일반 대중의 주류 섹슈얼리티를 건드리지 않는 안전한 매체만이 남는다(퀴어 베이팅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심지어 LGBT를 주제로 다루며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조차 성애의 문제는 거의 가시화하지 않는다는 문제제기를 받은 바 있다[7]).

대중매체에서 퀴어 베이팅의 문제는 너무 흔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라 일일이 지적하기도 불가능할 정도이다. 가령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시크릿 가든>, <성균관스캔들>의 공통된 서사는 불가피하게 남장한 여성 주인공과 남성 주인공 사이에 호모섹슈얼한 로맨스가 펼쳐지다가 결국 정체를 밝히고 이성애 관계로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것이었다.[8] 2019년 방영된 <www: 검색어를 입력하세요>의 사례는 조금 특이하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여성 캐릭터 3인방(차련, 배타미, 송가경)이며 이들 사이에는 매우 노골적으로 섹슈얼한 행동과 대사들이 오간다. 그럼에도 이들의 연애는 각각 한 명씩 남성 파트너가 부자연스럽게 배정된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로맨스는 아무런 흥미로움도 주지 않는 지겨운 대사만을 반복할뿐더러 스토리와 심하게 따로 움직인다.[9] 위험한 여성 간 로맨스를 허락하느니 일관성을 잃더라도 지루한 이성애 관계를 넣고야 말겠다는 이 강력한 배제의 의지는 한국 사회의 섹슈얼리티 배치구도가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례라 하겠다.

앞서 살펴 본 백합 논쟁을 이러한 퀴어 섹슈얼리티 지우기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백합을 레즈물과 분리하려는 시도도, 혹은 탈성애화하려는 관점도, 결국 여성 간의 서사를 섹슈얼리티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축소한다. 그리고 이런 분리에 대해 비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유머러스하게 항의한다.

 

여성 간 연대도 가끔은 나쁘지 않겠지.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 여성 간 연대도 하면서 섹스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퀴어 페미니스트라면 자고로 이분법을 경계해야 하니까. 내가 생각해도 헛소리지만 오늘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살짝 돌아누워서 나를 올려다보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으므로.

<프로파간다에서 백합 착즙하기>

 

여기서 나는 장르적 규정의 정확성이나 적절성, 혹은 운동으로서의 실효성과 올바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며, 대신 이러한 섹슈얼리티 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에 대해서만 지적한다. 백합을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그리고 레즈물을 육체적 사랑으로 연결지을 때, 이것이 이성애 중심의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이는 성애의 양상을 더 다양하게 분석하는 계기를 제공할까? 아니면 퀴어들의 관점이 백합이라는 장르에서 쫓겨나 레즈물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장르로 한정됨으로써 성애의 양상을 더욱 파편적으로 보게 만들까? 내 생각에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 ‘백합-레즈구분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이미 퀴어들의 섹슈얼리티를 주류 컨텐츠로부터 추방하려 드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 대한 고려는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의 백합쓰지마세요부류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요구된다. 백합 장르 속의 억압적인 성애적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를 완전히 제거하려고 시도할 때, 이 급진적 시도가 역설적이게도 섹슈얼리티의 측면에서 보면 퀴어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적 관점을 취하는 성 보수주의적 관점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루빈의 지적(루빈, 2015: 340)은 여전히 유효하다. 젠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적 관점이 이성애중심적인 섹슈얼리티만을 허용하려는 보수적 관점과 합치한다는 이 아이러니는, 다음 장에서 살펴볼 트랜스젠더 논쟁에서도 다시 드러난다.

 

3. 성별 규범을 넘어서기: 트랜스젠더와 섹슈얼리티

 

프로파간다 3은 레즈비언 바 주인장인 B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트랜스젠더 은수와 썸을 타는 내용이다. 그런데 전작들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여전히 유머러스함은 빛나지만 조금 더 무겁고 심각하다. 이 무거움은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들이 경험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경험들과도 맞물려 있다. 성인 트랜스젠더의 40% 이상이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으며, 트랜지션에 따르는 수백~수천만 원의 의료비를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한다.[10] 트랜스젠더 군인이 신체 훼손을 이유로 강제로 전역당하고, 여대에 입학한 트랜스젠더가 수많은 반발과 협박에 못 이겨 등록을 포기해야 했던 최근 사건들은, 2020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성소수자들, 더욱이 트랜스젠더에게 한국 사회가 얼마나 억압적이고 적대적인 영역인지를 보여준다. 나는 3장에서 이러한 트랜스젠더 배제적 구조가 시스젠더-이성애라는 주류 섹슈얼리티 구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해명하고자 한다.

프로파간다 3의 제목은 <프로파간다에서 화장실 로맨스 착즙하기>이다. 전작이 백합’, 그리고 부치-관계를 다루었기에 각각 제목에 백합 착즙하기부치파이트 착즙하기가 들어갔다면, 3편의 제목이 화장실 로맨스가 된 것은 무슨 이유인가? 작품에서 레즈비언 바 주인장 B가 트랜스젠더 은수와 만나게 된 계기는, 은수가 화장실에서 곤란을 겪는 걸 보고 도와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결말에서 이들의 로맨스가 다시 시작되는 곳 역시 화장실이다.

 

- 당신 여자야, 남자야? 왜 여기 들어와?

- 수상한데. 경찰서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냐?

- , 그러니까... 그게...

은수는 문자 그대로 구석에 몰려 있었다. 힐끗 얼굴을 보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 온몸을 가늘게 떠는 게 보기만 해도 안쓰러웠다. 두 여자는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은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B도 지긋지긋하게 마주하는 시선이었다. 진짜 여자가 맞는지 기어이 검열하겠다는 그런 시선.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B는 대뜸 두 여자와 은수 사이를 가로막고 나섰다.

<프로파간다에서 화장실 로맨스 착즙하기>

 

작품에서 전개에 중요한 장소로 (로맨스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화장실이 들어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데, 트랜스젠더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화장실 이용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화장실을 갈 수밖에 없지만, 트랜스젠더에게 화장실은 가장 괴로운 장소가 된다. 이때 핵심은 트랜스젠더들이 타인으로부터 어떤 성별로 간주되는지(패싱되는지) 문제이다. 패싱되는 성별과 다른 화장실로 들어갈 때 이들은 숱한 제지와 협박, 폭력에 시달리며, 이 두려움 때문에 화장실을 최대한 가지 않으려고 한다(때문에 심지어 일부러 물을 적게 마시기도 한다). 다시 말해 어떤 성별로 패싱되는지 여부는, 해당 개인이 어떤 영역에 허용되는지 여부와 직결되어 있다. 시스젠더들에게 너무나 자명해서 오히려 비가시적인 이 명제는, 트랜스젠더들에게 가장 뼈저리게 각인되어 있다.

어떤 공간에 접근이 허용되는지의 문제는 트랜스젠더들에게 매순간 따라붙는다. 트랜스젠더는 군인으로 복무할 수 있는가?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추구하다 보면, 이 사회가 모든 영역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성별 이분법으로 규율화하고 구분해두었는지가 드러난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느끼지 못하듯이 시스젠더들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이 성별 구분이, 트랜스젠더들에게는 촘촘한 그물망으로 자리잡는다.

성별 구분은 페미니즘 내부에서 늘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거칠게 말해 트랜스젠더는 신체적 성별 구분으로서의 섹스와 사회적 성별 구분으로서의 젠더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이들을 가리키는데, 주디스 버틀러는 자연적인 신체적 성별로 간주된 섹스가 사회적 관점과 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지적한다면(루인, 2018: 87), 반대로 쉴라 제프리스같은 TERF(Trans Exclusive Radical Feminist,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적 성별이라는 젠더가 여성억압적인 구조로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 자체, 그러니까 섹스-젠더 구별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닌데, 그런 논의를 위해서는 이 리뷰가 참고한 것보다 훨씬 많은 참고문헌과 논의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글에서 관찰하는 지점은 작품의 은수와 같은 트랜스젠더라는 존재가 어떻게 기존의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일부 페미니스트들로부터도 적대시당하는 존재가 되었는지의 여부이다. (물론 이 관찰은 불가피하게 성별 구분의 문제를 건드릴 수밖에 없지만, 본문에서는 섹스-젠더 논쟁 자체를 주제로 더 깊이 파고들지는 않을 것이다.)

트랜스젠더가 이처럼 문제적 존재로서 적대시당하는 것은, 이들이 섹슈얼리티 규범을 어길 뿐만 아니라 뒤흔드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김미연, 2019). 우선 가부장제적 관점에서 볼 때, 앞서 2장에서 본 것처럼, 이 사회의 주류 섹슈얼리티는 이성애 구도를 기본 구도로 삼는다. 성적 관계는 사회적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서로 다른 성별, 즉 여자와 남자 간의 관계에서만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받는다. 그 밖의 모든 성적 지향은 퀴어queer(이상한, 변태적인)’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트랜스젠더는 이 정상적 섹슈얼리티 관계를 위반한다. 시스젠더-이성애자들이 보기에 트랜스젠더는 남자나 여자라는 일의적인 의미에서 규정이 불가능한 존재이다(이는 여성/남성으로 정체화하는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프로파간다 3편에 등장하는 N과 같이 여성/남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거부하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체적으로 어떤 성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남성/여성의 기준인가? 그렇다면 성별 정정 수술을 거쳤거나 질병으로 인해 신체 기관을 제거한 사람의 성별은 무엇인가? 아니면 그가 남성적/여성적으로 행위양식을 갖는 것이 기준이 되는가? 이 복잡한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고 대답할 능력이 없는 주류 이성애자들(특히 가부장적 남성들)은 섹슈얼리티의 사회적 규범을 위반한 트랜스젠더를 괴물로 타자화하여 애초에 섹슈얼리티 배치구도로부터 삭제해버리는 간편한 방법을 택한다.

그런데 성별 구분에서의 이와 같은 범주적 모호성은 페미니즘에서도, 특히 TERF로 지칭되는 이들에게도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트랜스젠더는 성별 구분 자체가 변환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단선적인 규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은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범주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기여했지만, 동시에 여성 공동체 내에 여성으로 위장/자칭하는 남성이 침입한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김미연, 2019: 125). 이 우려는 여성임을 규정하는 근거가 오직 생물학적인 (성기/염색체 등) 규정만으로 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비이 작가는 이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N이 표정을 가다듬더니 갑자기 근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죄송하지만 선생님의 가랑이 사이를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거기 뭐가 달렸는지 알아야 선생님을 제대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마치 연극의 한 대사처럼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다들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장내가 한바탕 들썩거렸다. N은 거기서 말을 그치지 않고 이어갔다. (중략)

- 안녕하십니까. 젠더 감시 센터에서 나왔습니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기 인증이 요구되며 필요시 XX염색체임을 증명하는 의사의 소견서를 첨부해야 합니다. 필요시 그 자리에서 채혈을 하여 혈중 에스트로겐 농도를 측정할 수 있으니 이 점 역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젠더 감시 센터에서 알려드립니다.

<프로파간다에서 화장실 로맨스 착즙하기>

 

이러한 생물학적인 규정이 전제하는 바는, 사회적으로 지정된 섹슈얼리티의 요소에서 본질적으로 변경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태어난 아기에게 의사가 지정하는 성별은 그 인간이 죽을 때까지 고정된 성 정체성이 된다. 이것은 성별 정정 수술을 통해서도, 혹은 자기 스스로의 재정체화를 통해서도 변경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본질주의는, 의외로 많은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염색체 검사 등을 통해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을 제대로 확인한 적도 없으며 더욱이 적지 않은 수(가령 인터섹스는 전체 인구의 약 2%로 추정)가 성별 이분법의 경계 바깥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한다.

트랜스젠더가 이분법적인 성별 규정, 혹은 본질주의적인 성별 규정에 대해 혼란을 제기할 때, 그리하여 타인에 대한 규정이 섹슈얼리티적 관점에서 인식적으로 불분명한 상태에 머무를 때,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반응은 공포이다. 공포는 미지의 대상에 대한 경계의 감정이며,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자기보존적인 보수적 감정이다. 가부장적인 이성애자에게 트랜스젠더가 괴물같은 존재로 표상된다면, TERF에게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외부 침입자로 간주된다. 어느 쪽에서든, 그러니까 가부장적인 성 보수주의 관점에서든 혹은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든, 사회적으로 주어진 섹슈얼리티 규범을 의심하지 않은 채 받아들일 때, 트랜스젠더들은 배제되고 비가시화된다.

물론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인 것은, 딱히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인정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 누구도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타인에 대해 지정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지정받을 수 없으며, 정체화는 자기 스스로의 인식과 규정을 통해 가능하다. 성 보수주의자든 혹은 TERF,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말이다.

 

- 누구랑 같이 있든 간에 나는 트랜스젠더 여성이고 레즈비언이니까. 그건 그 누구의 인정도 필요없는 거였어.

은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활짝 웃었다. 나직하면서도 단호한 그 목소리는 겨울의 공기를 비집고 B의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고요한 밤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프로파간다에서 화장실 로맨스 착즙하기>

 

그러나 이러한 정체화와 별개로, 그가 타인과 맺는 관계는 결국 사회적 섹슈얼리티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모든 개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들을 통해 매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랜스젠더가 관계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즉 적대시되지 않고, 나아가 동등한 시민으로서 가시화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의식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섹슈얼리티 규범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다. 성적 지향을 이성애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젠더 정체성을 의료적으로 지정된 신체적 성별과 합치된 것으로 표상하는 섹슈얼리티 규범들을 의심하고 그로부터 배제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 이 고찰 속에서 트랜스젠더는 불가지적인 상태를 벗어난다. 차이에 기반을 둔 이 고민은 매끄럽고 온화한 소통 과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많은 상처와 불협화음을 동반할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그 과정은 필요하다. ‘프로파간다 3의 결말에서 B가 은수에게 고백하듯이.

 

B는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B는 굳게 닫힌 화장실의 칸막이를 똑바로 마주보고 섰다.

- 미안해. 나는 네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

-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B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재차 말을 이었다.

- 난 아마 너한테 상처를 줬겠지.

- ......

- 나는 너를 모르고, 너는 나를 모르니까.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우리는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B는 둘 사이를 견고하게 가로막은 화장실 문을 노려보았다. 결국은 타인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B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 그래도 난 너에 대해서 알고 싶어.

<프로파간다에서 화장실 로맨스 착즙하기>

 

4. 결론: 배제와 억압 없는 섹슈얼리티의 재구성을 위하여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섹슈얼리티 차원의 존재론-인식론적 문제제기로 요약된다. 2장에서 퀴어 섹슈얼리티가 매체에서 재현되는 방식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았다면, 3장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주류 섹슈얼리티 규범을 어떻게 위반함으로써 비가시화되는지를 고찰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현재진행형이며, 더욱이 개선되리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쉽게 하기 어렵다. 성 정체성/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의 입법은 요원하며, 이성애-시스젠더 중심의 섹슈얼리티 구도는 아직 굳건해 보인다. 물론 매체에서 퀴어들의 이야기가 점점 더 많이 등장하며 가시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마저도 꾸준히 왜곡되거나 다시 반발에 밀려 삭제당하곤 한다.

비이 작가의 프로파간다 3부작은 이와 같은 현실 사회의 배제와 억압적인 모습을 적절하게 반영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퀴어들의 행복한 로맨스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 행복한 결말이 더욱 사회적으로 개연성을 갖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나아가 이곳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책임으로 남겨져 있다. 배제와 억압이 없는 섹슈얼리티가 실현되기 위한 더 많은 문제제기와, 더 많은 지지와 연대를 보낼 책임이.

 


[1] 서찬휘, “하늘 너머에서 온 친구,” 한겨레, 2020년 1월 10일 수정, 2020년 1월 26일 접속,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23937.html

[2] 키안, “<이윽고 네가 된다리뷰 – 백합과 레즈 사이,” 텍스트릿, 2019년 9월 17일 수정, 2020년 1월 26일 접속, https://textreet.net/board_YNKV61/92146

[3] yora, “저 역시 답변에 대한 반박입니다,” 2019년 9월 18일 수정, 2020년 2월 9일 접속, https://textreet.net/board_YNKV61/92890

[4] 이러한 주장은 백합 장르가 퀴어적 당사자성을 지닌다는 전제를 지닌다그리고 이 전제에 대해서는 백합 장르 향유층을 분석한 다음의 설문조사 연구를 참조할 수 있다. yora, “백합 향유층의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설문조사 결과 및 분석,” 2020년 1월 19일 수정, 2020년 2월 9일 접속, https://textreet.net/board_YNKV61/169761

[5] 퀴어 논란영화 <메소드>... 방은진 감독의 결정적 실수,” 오마이뉴스, 2017년 11월 15일 수정, 2020년 2월 9일 접속, http://omn.kr/okis

[6] 퀴어 베이팅은 원래 젠더 역할을 위반한 이들에게 동성애자 낙인을 찍고 축출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였지만최근 이 개념은 퀴어 섹슈얼리티를 포함하는 관계인 듯 보이다가 결국 우정으로 귀결되는 재현 방식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허주영, 2019: 29)

[7] 서울대 QIS에서 발간된 잡지 <퀴어플라이>의 다음 기사 참고. “기획기사 1-1: 그와 웹툰의 사정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의 작가와난 씨의 이야기,” 서울대학교 <Queer Fly> 6, 2009년 10월 19일 수정, 2020년 2월 13일 접속, https://m.blog.naver.com/queer_fly/40092343045

[8] 이와 유사한 시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에도 등장하는데모 트위터리안은 이를 다음과 같이 비꼬았다. “<뮬란에서 리 샹은 뮬란이 남자라고 생각했을 때는 두근두근하다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죽이려 하는 인물인데 과연 모든 일이 끝나고 디즈니 프린스로서 뮬란과 결혼하는 것이 본인에게 행복일까헤테로 로맨스를 작중 시련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는 디즈니 가부장주의의 피해자가 아닐까?” 출처: sub_plot, 2019년 7월 8, [Twitter Post], Retrieved from https://twitter.com/sub_plot/status/1148240890500005888

[9] 듀나, “‘검블유’, 민망하고 어이없지만 재미있는 삼각관계 치정극”, 엔터미디어, 2019년 7월 3일 수정, 2020년 2월 9일 접속, http://www.entermedia.co.kr/news/news_view.html?idx=9784

[10] 김승섭, “무지했고 무례했다,” 한겨레21, 2017년 12월 수정, 2020년 2월 13일 접속,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4593.html 

 


참고문헌

 

* 비이 작가의 1차 문헌

<프로파간다에서 백합 착즙하기>, 브릿G, 20196월 업로드, 2020216일 접속,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179897&novel_post_id=85820

<프로파간다에서 부치 파이트 착즙하기>, 브릿G, 20199월 업로드, 2020216일 접속,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201465&novel_post_id=94413

<프로파간다에서 화장실 로맨스 착즙하기>, 브릿G, 201912월 업로드, 2020216일 접속,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228149&novel_post_id=102903

 

* 2차 문헌

게일 루빈, (2015) 󰡔일탈: 게일 루빈 선집󰡕, 신혜수 외 옮김, 현실문화.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5) 페미니즘의 개념들, 도서출판 동녘.

루인, (2018) 젠더로 경합하고 불화하는 정치학: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 그리고 퀴어 연구의 이론사를 개괄하기, 실린 곳: 전혜은·루인·도균,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도서출판 여이연, 2018.

김미연, (2019) 난 영원히 이행중(I Think of Myself Perpetually in Transition)”: 주디스 잭 할버스탬, 󰡔/성이론󰡕 41, 121-137.

허주영, (2019) 미디어에서의 퀴어 섹슈얼리티 재현 불가능성과 탈규범의 가능성, /성이론41, 27-47.

 

* 인터넷 링크

 

김휘빈, <백합쓰지마세요>, 브릿G, 20194월 업로드, 2020216일 접속,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170209&novel_post_id=81823

하늘 너머에서 온 친구,” 한겨레, 2020110일 수정, 2020126일 접속,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23937.html

“<이윽고 네가 된다> 리뷰 - 백합과 레즈 사이,” 텍스트릿, 2019917일 수정, 2020126일 접속, https://textreet.net/board_YNKV61/92146

저 역시 답변에 대한 반박입니다,” 2019918일 수정, 202029일 접속, https://textreet.net/board_YNKV61/92890

백합 향유층의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설문조사 결과 및 분석,” 2020119일 수정, 202029일 접속, https://textreet.net/board_YNKV61/169761

sub_plot, 201978, [Twitter Post], Retrieved from https://twitter.com/sub_plot/status/1148240890500005888

퀴어 논란, 영화 <메소드>... 방은진 감독의 결정적 실수,” 오마이뉴스, 20171115일 수정, 202029일 접속, http://omn.kr/okis

“‘검블유’, 민망하고 어이없지만 재미있는 삼각관계 치정극”, 엔터미디어, 201973일 수정, 202029일 접속, http://www.entermedia.co.kr/news/news_view.html?idx=9784

기획기사 1-1: 그와 웹툰의 사정: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의 작가, 와난 씨의 이야기,” <Queer Fly> 6, 기획기사 1-1, 20091019일 수정, 2020213일 접속, https://m.blog.naver.com/queer_fly/40092343045

무지했고 무례했다,” 한겨레21, 201712월 수정, 2020213일 접속,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4593.html

 

 


위 글은 애니큐어와 웹툰인사이트에서 주최하는 제2회 서브컬쳐 리뷰대회에 제출된 글입니다.

https://www.webtooninsight.co.kr/C/C?id=521&type=community&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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