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그림: 미울/BV 우유를 사서 귀가하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 남성, 집에서 밥을 차리는 여성, 교복을 입고 귀가한 학생, 그리고 집에서 식사를 돕는 꼬마. 정상가족의 형태에 익숙한 독자들은, 1화의 이 모습을 보며 은연중에 부-모-자녀들이라는 도식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모두 남매이다. 은 초등학생인 막내 도령과 그 위 다섯 남매(화령, 재령, 미령, 보령, 세령)의 이야기다. 직장 근처에서 자취하는 첫째 화령과 대학 기숙사에 사는 셋째 보령을 제외하고는, 직장인 재령과 소설가 미령, 고등학생 세령과 초등학생 도령이 한 지붕 밑에서 서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간다. 이 이야기는 얼핏 보면 한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내는 재미있고 따뜻한 일기로 보인다. 그러나 훈훈한 로맨스와 감동적인 이야..

글/그림: 팀 심우도 1. 서: 슬픔을 이야기한다는 것 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모든 슬픔은, 그것이 이야기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된다는 것은 서사화됨을 의미하며, 바꿔 말하면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태의 경로를 추적하며 의미를 해명해낸다는 것이다. 어떤 슬픔과 고통도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별과 상실은 때로 아무런 전조 없이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아픔은 가장 부조리하고 이해불가능한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불행 자체에 의해서도 괴로워하지만, 그 불행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서도 고통스러워한다. 사람들은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슬픔과 고통에 대한 의미화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들은 본래 의미친화적인 대상이 아니며,..

전 세계의 나라들을 커피 소비량이 더 많은 쪽과 차 소비량이 더 많은 쪽으로 나눈다면, 한국은 단연 커피 쪽입니다. 한국인은 세계 평균(132컵)보다 약 3배가량(353컵)의 커피를 마시지만, 차는 세계 평균(0.57kg)의 1/3도 마시지 않습니다(0.16kg). 편의점에 들어가도 밀크티보다는 커피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길거리에서도 카페는 찾기 쉽지만 찻집은 찾아보기 어렵지요. 웹툰에서도 마찬가지로, 카페가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는 자주 발견할 수 있지만(네이버 , 다음 , 레진 , 등) 차/찻집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차 이야기는 마이너 장르입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도 적고, 그 이야기를 소개하려는 사람은 더 적으니까요. 본문에서 리뷰하려는 웹툰들은 차..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하다가 직장에서 해고된 장유진은 (술김에)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이후 장유진이 대학 동기인 괴짜 천재 천태환을 천신만고 끝에 선거 전략가로 영입하면서 두 사람의 선거 준비가 본격화된다. 학력도 명망도 재력도 없고 오직 성실함과 정직함, 열정만을 가진 주인공이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동원해야 하는 선거에 뛰어든다는 이 비현실적인 설정은, 정치 장르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클리셰, 즉 덕 있고 선한 주인공과 천재 책사의 결합이라는 정치물의 공식을 통해 그 개연성을 충당한다. 문왕-강태공, 유방-장량, 유비-제갈량으로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공식은 같은 봉건시대 정치극에서만이 아니라, , 와 같은 현대 정치물에서도 유지된다. 이러한 공식이 이토록 오래..

글/그림: 우현 집은 사적인 영역이다. 누구나 접근가능한 공적인 영역과 달리, 사적 영역은 그 내부가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는 곳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집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다른 관계들과 구분되는 고유한 친밀성을 지닐 가능성을 갖지만, 뒤집어 말하면 사적 영역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집이란 외부로부터 폐쇄적이고 고립되기 쉬운 영역이 된다. 많은 가정에서 은폐된 폭력과 학대가 자행되어도 외부인들은 그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알더라도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하려 해도 (사적 자율성의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집이라는 공간은 마음대로 벗어날 수는 없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은 마냥 공적인 존재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식적인 관계에서 요구되는 가면을 내려놓..

임신한 시민의 자리는 어디인가: 가 던지는 사회적 고발장 쇼쇼 작가는 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만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엄마도 사람이다”였다고. 이 호소는, 바꿔 말하면, 한국 사회는 임신한 여성 시민을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에서 나는 암묵적인 두 가지 답변을 읽어내고자 한다. 첫째로, 누군가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결정을 내릴 때, 그는 온전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둘째, 그를 둘러싼 공동체 안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쇼쇼 작가의 호소에 따르면 이 규정들은 임신한 시민들에 대해 적용되지 않는다. 즉 는 임신 이후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임과 동시에, 임신과 함께 갑자기 2등 시민으로 격하된 자..

꼬마비 작가는 하나의 사태를 가정하고 현실 맥락에서 밀어붙이는 전개를 보여준다. 이것은 주인공이 눈앞에 닥친 재앙에 대처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재난물과는 다르다. 누구와 섹스를 했는지 모두가 알 수 있게 되거나(),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 관광 중이던 한국인들이 난민이 되는 상황()에서 초점은 개별 인물을 넘어 사회 전체를 향한다. 신작 에서도 꼬마비 작가는 흥미로운 가정을 던진다. 전지전능한 문자 그대로의 신이 이 세상에 강림한다. 이 하나의 사태만으로 인간 사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인간들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그리고 구체적으로 신에 의해 무엇이 바뀌게 될 것인가? 이원론적 도식의 붕괴: 축복 또는 재앙 ‘신의 세계’를 상정하는 세계관은 늘 다음과 같은 이원론적 도식을 지닌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87137 글/그림: 김이랑 사람과 관계맺기 위해 필요한 거리는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누구인지 그리고 언제인지에 따라 거리는 달라집니다. 부모-자식 간 거리는 버스에서 만난 옆자리 승객과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습니다. 하지만 때로 아이가 저지른 잘못을 고찰하려면 옆자리 승객의 입장에서 아이를 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관계는 고정된 거리가 아니라, 시시각각 변동하는 거리 속에서 형성됩니다.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적절히 거리를 조절하는 감각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당신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타인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는 것도, 시험을 망친 친구의 하소연을 자연스럽..
https://www.justoon.co.kr/content/home/08tf0848726c 글/그림: 돌배 대부분의 스포츠 만화는 경쟁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승부의 서사를 지닙니다. 승리/패배라는 이항 도식을 통한 성장의 서사는 스포츠물 전반에 굉장히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그렇지 않은 만화를 생각하기가 더 어려울 정도입니다. 또한 이 승부 속의 성장이라는 요소는 스포츠 만화의 핵심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배제하면 작품의 스토리가 빈약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치열한 승부와 숨막히는 경쟁의식은 종종 과다한 피로감을 안겨주기에, 때로 좀 더 삼삼한 작품을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는 그런 ‘삼삼한’ 작품입니다. 돌배 작가의 두 번째 스포츠물인 이 작품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승리와 패배라는 도식 바깥에..
http://www.justoon.co.kr/content/home/09fi0anf323a 예전에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글을 써 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제대로 글을 맺은 적은 없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내린 결론은,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묶어서 이야기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세부적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낫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유 작가님의 은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 더 정확히는 고고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님의 세 번째 장편인 이 작품은, 고고학과 학부생 이하얀의 파란만장한 학부생활 이야기입니다. 전작 웹툰 에서 주인공은 거대한 악의 조직과 맞서 싸워야 했었지요. 과연 에서 이하얀은 어떤 음모에 맞닥뜨리게 될까요? 하얀은 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