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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우현


집은 사적인 영역이다. 누구나 접근가능한 공적인 영역과 달리, 사적 영역은 그 내부가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는 곳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집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다른 관계들과 구분되는 고유한 친밀성을 지닐 가능성을 갖지만, 뒤집어 말하면 사적 영역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집이란 외부로부터 폐쇄적이고 고립되기 쉬운 영역이 된다. 많은 가정에서 은폐된 폭력과 학대가 자행되어도 외부인들은 그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알더라도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하려 해도 (사적 자율성의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집이라는 공간은 마음대로 벗어날 수는 없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은 마냥 공적인 존재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식적인 관계에서 요구되는 가면을 내려놓을 수 있는, ‘벌거벗을’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기고 온전히 의탁할 수 없는 영역이 없다면, 그는 길고양이처럼 방황하는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집>을 읽고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집이 마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집을 찾을 수 있는가?

관계적 공간으로서의 집

이 문제에 대한 대답에 앞서, 여기에서 이야기되는 ‘집’이란 그저 사고팔 수 있는 몇 평짜리 공간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공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짚어야 한다. 편의점에서 알바로 일하던 주인공 지욱에게 편의점 점원이 묻는다. 너는 돈 모아서 뭐 살 거야? 지욱은 대답한다. 집이요. 이 놀라운 대답에 어이가 없어진 점원은 서울 집값을 직접 검색해서 보여준다. 편의점 시급으로는 기껏해야 곰팡이 가득한 반지하 월세밖에 구할 수 없다는 점원의 말에 지욱은 개의치 않는다. 괜찮아요. 거기에는 아버지가 없으니까요(38화).
이 대화에서 드러나듯이, <두 번째 집>의 ‘집’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적인 공간이다. 고등학생 지욱과 도서관 직원 정원은 계속해서 되뇌인다. ‘집에 가고 싶다’고(12화). 그들이 몸을 뉘일 수 있는 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버지가, 남편이 있다. 자신을 학대하고 구타하는 존재들이 있는 그곳은 결코 ‘집’이 될 수 없다(13화). 
작가는 작품에서 명암을 통해 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 집>에 등장하는 집들은 예외적인 순간들을 제외하면 늘 그림자 속의 어두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공간에서 구성원들은 서로 어떤 밝은 대화도 소소한 즐거움도 갖지 못한다. 한나 아렌트가 묘사한 고대 헬라스 시대의 가정들처럼, 이곳에는 무의미하고 끊이지 않는 가사노동과 가부장의 자의적인 폭력들만이 존재한다. 지욱의 아버지도 정원의 남편도 집을 치우거나 밥을 먹어야 할 때 등 필요에 의해서만 주인공들에게 말을 건다.
대조적으로, 어둡기만 하던 공간인 집이 아주 환하게 빛나는 장면이 있다. 지욱이 정원의 거실 전등을 교체한 순간이다(6화). 이 장면에서 원래의 가족 구성원이 아닌 이들이 함께 있을 때 오히려 집은 정말 집다워진다. 앞서 아버지나 남편과의 관계가 순전히 일방적인 요구와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욱과 정원이 모여 전등을 켜는 순간은 협력의 관계가 빛을 발한다. 정원과 지욱에게 집을 갖는다는 것은 상호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관계적 영역으로서의 집을 모색하는 지욱과 정원은 서로에게서 ‘두 번째 집’을 발견한다. 여기에서 관건은, 피해자들이 어떤 토대에서 그와 같은 영역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이다.


동정에서 사적인 연대로

집 안에서 집다운 집이 부재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집이 아닌 곳에서의 관계를 모색한다. 이 관계는 ‘집 밖’에서라기보다 ‘집 옆’에서 등장한다. 1화에서 아버지에게 구타당해 팔에 멍이 든 채로 등장하는 지욱과, 남편의 폭언과 폭행으로 상처입은 정원은 서로 옆집에서 들리는 소리를 통해 대략의 사정을 짐작한다. 집 안도 바깥도 아닌 경계에서 만난 이들은 각자가 짊어진 짐에 대해 섣불리 묻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저녁으로 먹으려던 편의점 도시락을 건네주거나, 시어머니가 가져온 복숭아를 깎아서 건넨다.
지욱과 정원이 길고양이를 돌보는 것처럼, 이들의 관계는 동정심으로부터 시작되는 듯 보인다.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한 이에게 한 끼 식사를 내밀고,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동정심의 경계는 명확하다. 동정은 수혜자의 영역 안으로 침범할 수 없으며 그 바깥에서만 도움을 베풀 수 있다. 이는 또한 베푸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을 때 가능한 관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정원은 생각한다. 내 주제에 동정이라니(13화). 피차 학대당하고 폭행당하는 처지에 누가 누구를 동정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런 개입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의 항의로 인해 더 이상 고양이의 밥을 챙겨줄 수 없게 된 것처럼(24화), 동정의 끈은 쉽게 끊어진다.
그렇다고 이 관계를 로맨스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친구 혜인이 오해하는 바와 달리, 지욱과 정원은 애정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성애적인 요소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들은 상대를 기다리거나 반가워하곤 하지만, 여기에 가슴이 뛰는 묘사는 없다. 애초에 두 사람이 서로를 지탱하게 된 근거가 애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로맨스가 조금이라도 개입했더라면 이미 휘청거리고 있었던 두 사람의 삶은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동정도, 로맨스도 아니라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대체 무엇일까? 이를 간접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하나는 간병하다가 잠시 집에 들른 정원이 지욱을 집에 초대해 시집을 빌려주는 장면이다(39화). 간병으로 지친 정원은 잠시 조는데, 이를 보고 지욱은 생각한다. ‘집이구나.’ 이후 눈을 뜬 정원 앞에 졸고 있는 지욱이 보이자, 정원 역시 생각한다. ‘집에 왔구나.’ 이 장면은 두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집이 되어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자신들에게 닥치는 불운을 모두 피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들은 잠시나마 서로의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는 영역이 된다. 우산을 쓰고 함께 돌아가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말이다(10화). 어깨는 젖었지만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는 것은 면할 수 있었듯이, 그들은 집이라는 불운 속에서도 자신만의 ‘집’에서 그것을 버텨낼 순간을 발견한다. 이처럼 약자들이 나란히 어깨를 걸고 걷는 관계를, 우리는 연대라고 지칭한다.
물론 이 용법은 그리 자연스럽지만은 않다. 일반적으로 연대라고 호명되는 관계는 대체로 공적인 영역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가치를 위해 서로 다른 위치의 행위자들이 나란히 서는 일반적인 연대와 달리, 정원과 지욱의 관계는 사적인 영역의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이 연대는 겉으로 드러나는 가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비가시적인 지지의 끈으로 묶여 있다. 약자이자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서 서로 의지하는 그들의 연대는 분명 제한적이고 연약하다. 그러나 이 연약한 연대의 끈은, 정원과 지욱이 결정적인 개입을 마음먹는 순간 단단해진다. 정원이 아픈 길고양이를 병원에 입원시키듯, 지욱은 옆집의 가정폭력을 경찰에 신고한다(40화). 자신의 자리를 갖지 못하던 이들은 선을 넘어 서로의 삶에 개입한다. 
 
결론: 사적인 연대, 그 이후

지욱이 자신의 집을 나가서 경찰에 신고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화에서 정원이 이사짐을 싸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허울뿐이었던 집을 해체시킨다. 이제 지욱과 정원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집을 설계할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도 없고, 필요에 따라서만 호출하는 사람도 없는 곳. 지욱의 쓸쓸한 졸업식에 정원이 찾아오는 장면은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게 만들지만,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제 그들이 각자 새로운 집을 구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니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집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 집을 찾을 수 있는가? 어떻게 집의 깊은 어둠을 헤쳐나올 수 있는가? <두 번째 집>을 읽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연대를 통해서, 다시 말해 약자와 피해자들 간 비가시적인 연대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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