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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나라들을 커피 소비량이 더 많은 쪽과 차 소비량이 더 많은 쪽으로 나눈다면, 한국은 단연 커피 쪽입니다. 한국인은 세계 평균(132컵)보다 약 3배가량(353컵)의 커피를 마시지만, 차는 세계 평균(0.57kg)의 1/3도 마시지 않습니다(0.16kg). 편의점에 들어가도 밀크티보다는 커피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길거리에서도 카페는 찾기 쉽지만 찻집은 찾아보기 어렵지요. 웹툰에서도 마찬가지로, 카페가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는 자주 발견할 수 있지만(네이버 <크레이지 커피 캣>, 다음 <커피와 하루>, 레진 <카페 보문>, <카페 로파무드라> 등) 차/찻집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차 이야기는 마이너 장르입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도 적고, 그 이야기를 소개하려는 사람은 더 적으니까요.
본문에서 리뷰하려는 웹툰들은 차 이야기라는 이 마이너 장르 중에서 제가 재미있게 봤던 작품들입니다. 네이버 웹툰의 <차차차>, 그리고 베스트 도전웹툰의 <봉봉미엘 홍차클럽>입니다<차차차>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연재된 뒤 완결되었으며, 네이버 완결 코너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12년부터 연재된 <봉봉미엘 홍차클럽>은 2019년 3월에 68화가 올라온 이후 미완결 상태에서 아직까지 연재가 재개되지 않았습니다. 두 작품의 성격은 무척 다른데, 한나 작가님의 <차차차>는 동양풍 의상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현실적인 찻집 이야기라면, rismemo 작가님의 <봉봉비엘 홍차클럽>은 홍차요정들이 등장하는 둥글둥글한 그림체의 판타지풍 작품입니다. 두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두 작품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웹툰 <차차차> 바로가기: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528785

 

웹툰 <봉봉미엘 홍차클럽> 바로가기:

https://comic.naver.com/bestChallenge/list.nhn?titleId=525252


홍차 한 잔의 온기: <봉봉미엘 홍차클럽>


홍차 애호가였던 할머니로부터 온갖 찻잎들과 다기 세트를 물려받았지만 홍차에 대해 아는 바라고는 참새 눈물만큼도 없는 평범한 회사원 봉구 씨. 그런 봉구 씨의 집 앞에 뜬금없이 길 잃고 쓰러진 홍차의 요정 미엘이 나타나 홍차 한 잔을 요청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작품은 홍차 뉴비였던 봉구 씨가 홍차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스토리이자, 또한 홍차 요정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암투를 다룰 예정입니다. 예정이라고만 적은 이유는 본격적인 요정 세계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연재가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알 수 없으니, 지금까지 나온 봉구 씨와 요정들의 홍차 이야기만 할 수 있겠군요. 
홍차에 대해 1도 모르는 봉구 씨에게 홍차 요정들이 홍차에 대해 알려주는 정보들은, 동시에 독자들에게 작가가 말해주고 싶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이 만화는 홍차 학습만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주제가 홍차라는 대상으로 특화되어 있으며, 홍차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하나씩 따라하며 차를 우려내고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실용적인 지침을 제공합니다. 홍차 티백을 우려내는 방법에서부터 홍차 다기 사용법, 홍차의 종류 등 다양한 정보들이 친절하고 상세하게 안내됩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홍차에 관심없는 사람들이 이 만화를 보게 하려면, 만화 자체가 우선 재밌어야겠죠. 그렇지 않으면 홍차 마니아가 아닌 사람은 이 웹툰을 볼 일이 없을 테니까요. 이 작품이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 스크롤을 내리게 하는 힘은, 다같이 둘러앉아 과자를 먹으며 홍차를 마시는 그 따뜻한 분위기를 잘 옮겨내는 데 있습니다. 요정들이 차를 제대로 끓이지도 못하는 봉구 씨의 집에서 자꾸 티타임을 갖는 것은, 그 차 한 잔의 향과 더불어 생겨나는 훈훈한 온기를 다같이 느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화면을 넘어 어느새 독자들에게도 은은하게 퍼져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마치 눈앞에서 홍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 것처럼요.

 


근심을 내려놓고 다같이: <차차차>

 


<차차차>의 소재는 주로 동양의 차 문화에 대한 소개입니다. 홍차를 비롯한 서양 차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심은 중국차와 한국차 쪽에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차 마시는 복잡한 예법(한국에서는 ‘다례’, 일본에서는 ‘다도’라고 합니다)이 고리타분하게 설명될 것 같지만, 그게 이 만화의 목표는 아닙니다. 이 작품의 이야기들은 훨씬 다양합니다. 가령 작가는 오늘날 차 문화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유지하고 실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거나, 차 무역에 대한 문제의식을 털어놓습니다. 혹은 차 이름들의 유래를 다루며 차에 관련된 다양한 전설이나 민담 등을 소개하기도 하고, 차 문화의 지역별-역사적 교류의 역사를 짧게 축약하여 알려주기도 합니다. 작가가 차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 얼마나 성심껏 조사했는지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차차차>의 이야기들은 단지 차 문화만을 소개하고 고민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 만화의 재미있는 점은, 여러 차 이야기들을 또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엮어 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동양풍 찻집 ‘고운 다실’에서 일하는 자여와 한이, 학도, 그리고 이곳을 찾아오는 여러 손님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전개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차와 관련된 경험담들을 응모받아, 이를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손님들 각각의 다양한 고민들과 추억들로 각색하여 찻집에서의 에피소드로 만들어냅니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독자들의 사연만으로 구성되지는 않으며 주요 등장인물 고유의 스토리도 존재하는데, 이 관계들을 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주인공들의 고민이 지나치게 로맨스 중심으로 접근되는 느낌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 스토리들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까워지거나 발전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생각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봉봉미엘 홍차클럽>의 잔잔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비교하면, <차차차>는 훨씬 복잡한 감정들이 녹아든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울고 소리지르며 싸우거나, 힘든 일상에 지치거나, 즐겁게 웃거나,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거나, 누군가에 대한 사모의 감정에 빠져들거나, 옛 추억을 되새기며 감상에 젖곤 합니다. 사람들은 이 다양한 감정의 파편들을 들고 고운 다실을 찾아오며, 찻집의 종업원들은 그때마다 다른 차를 꺼내들어 손님들을 (때론 동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축하합니다. 카페나 술집과 다른 점이라면, 이 찻집에서는 좀 더 은은하고 다양한 찻잎 향이 난다는 점이겠죠.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두 작품들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인물들이 새롭게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홍차를 멸치국물 우려내듯이 끓이던 봉구 씨는 홍차의 맛을 점점 새롭게 알아갑니다. 녹차나무와 홍차나무가 따로 있는 줄 알았던 한이는 전통차의 매력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런 좋아함의 순간은 <차차차>의 삼희가 자여에게 빠져들듯 일순간 찾아오기도 하고, 혹은 많은 사람들이 데자와의 맛을 깨닫는 것처럼 천천히 이뤄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갑자기 좋아하기 위해서는 징검다리가 되어 줄 무언가가 필요하겠죠. 봉구 씨와 홍차 사이에는 미엘이 있었고, 한이와 차 사이에는 찻집 고운 다실과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작가들은 독자와 차 사이에 <차차차> 혹은 <봉봉미엘 홍차클럽>이 매개가 되기를 바라고 있을 테고요.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복잡한데다가 비싸기까지 한 다기들을 사서, 가령 자판기에서 뽑아먹을 수 있는 음료들과 비교하면 번거롭기 그지없는 방법을 통해 차를 우려가며 마실 이유가 대체 뭘까?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돈과 시간을 들여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 공부해야 함을 뜻하니까요. 그리고 이 모든 무엇보다도 익숙하지 않은 감각을 조금씩 가다듬을 것이 요구되죠. 가령 농구를 하더라도 공을 던지는 감각이 없으면 농구가 재미있을 수가 없듯이, 차를 마시는 사람에겐 차의 맛을 느끼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홍차요정 미엘은 봉구 씨가 아무리 잘 끓인 차에 대해서도 ‘홍차 맛이네’라고 말하는 걸 보고 격분하며 봉구 씨의 미각을 훈련시키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운 다실의 주인 아씨도 자신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다례 교실에 한이를 보내지요.
물론 이런 훈련을 겪는다고 해서, 차 마시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과 돈을 정당화해 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혹자는 원사운드 식으로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딨어’라고 외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위의 작품들에서는 결국 간접적으로만 제시되고 있습니다. 작품 속 티파티의 분위기가 아무리 훈훈하고 따뜻해 보인다고 해도, 결국 그 향과 느낌은 자기가 겪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니까요. 다만 어떤 대상들에 대한 경험은 그 이전과 이후가 결코 같을 수 없다고 하죠. 조립식 키보드의 키감이 한번 익숙해지면 그 전의 키보드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혹은 펩시에 한번 맛들이면 다시 코카콜라를 마실 수는 없는 것처럼요. 마찬가지로 차를 마시는 것이 작품의 주인공들에게 그랬듯이 어떤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전달해준다면, 우리는 그 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데 드는 노력과 번거로움마저 사랑하게 되겠지요. <차차차>와 <봉봉미엘 홍차클럽>은 그런 새롭고도 비가역적인 경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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