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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버선버섯


시놉시스

고등학교를 자퇴한 탈학교 청소년의 이야기.


일상툰은 웹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작가 자신의 일상을 만화로 그려내는 장르는 웹툰 초창기부터 꾸준히 인기있는 장르였고, 이제 일상툰 내에서도 여러 갈래들이 보입니다. 유머로 일상을 풀어내는데 중점을 두거나(<마음의 소리>, <선천적 얼간이들>, <생활의 참견>, <레바툰> 등), 일상 경험들에 자신의 성찰을 함께 씌워내거나(<어쿠스틱 라이프>, <앙영의 일기장>, <루드비코의 만화일기> 등), 혹은 자신의 생활에서 특정한 주제를 중점적으로 묘사하는 다양한 파생장르들도 등장합니다(가족, 육아, 연애 등). 

이런 분류상에서, <학교를 떠나다>는 일상툰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작품은 버선버섯 작가님의 자기관찰/서술적 만화입니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작가는 고등학교 때 탈학교를 선택했고 이 경험에 관련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자퇴’라는 단편적인 사건만이 작품의 전체는 아닙니다. <학교를 떠나다>는 그것보다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벗어나기: 비학생 청소년의 삶


현대 국가들은 학교 교육을 미래 인력을 키워내기 위한 사회의 '근간'으로 설정하며 많은 역량을 투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잠정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 학생과 동일시된 청소년들은 이제 학교 커리큘럼에 자신을 맞춥니다. 이 보편적인 제도화가 안고 있는 문제는 자명하죠. 교육과정은 반드시 이탈자를 낳으며 이들에게는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이 이탈자들을 개개인의 실패로 보지 않고 제도의 실패로 간주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으며, 그나마도 사회적 편견은 전자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을 설명하는데 애를 먹습니다. 비학생이 된 이유는 단지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고, ‘성격이 이상해서’도 아니며, ‘말썽을 부렸기’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사회가 이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지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학생으로 정체화되지 않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합니다. 왜냐하면 사회는 학생 범주 바깥의 청소년에 대해 온전하게 해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매년 5-6만명씩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들은, 그래서 사회적으로 철저히 비가시화됩니다.

<학교를 떠나다>는, 어떤 의미로는 이 언어를 찾아나서는 작가 자신의 사회존재론적 기획입니다. 비학생 청소년인 버선버섯 작가는 자신이 왜 학교를 벗어나기로 선택했는지를 차분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이 자신에게 어떤 곳이었으며 그곳을 벗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는지, 자퇴를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했는지도 설명합니다. 또한 자퇴한 이후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나아가 일반적인 탈학교 자체에 대한 생각도 제시합니다. 이 작품은 탈학교를 딱히 추천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개개인이 선택할 문제이며, 다만 그 결정으로 인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 지에 대해 신중히 알아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버선버섯 작가는 단 한번도 학교를 그만둔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자신이 누릴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 것들(예를 들어 더 넓은 친구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아쉽다고 털어놓습니다. 이 점에서 <학교를 떠나다>의 시선은 대단히 냉철하고 현실적입니다. 탈학교 과정이 결코 낭만적으로 포장되지도 않으며, 비학생 청소년으로서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합니다. 이를테면 카페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비학생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은 발목을 잡습니다. 대낮에 거리를 걸으면 ‘학생이 이 시간에 뭐하니’라고 자꾸 묻는 어른들 때문에, 대학생인 척 하거나 아예 낮에는 집 밖으로 잘 나서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친구들과 영화를 보려 해도 학생증이 없어 난감합니다. 이처럼 비학생 청소년으로서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결코 생각만큼 평온한 일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학교를 벗어나서 좋았던 점도 빼놓지 않고 언급됩니다. 죽을만큼 괴로웠던 구획된 삶에 자신을 우겨넣어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 그리하여 자유로워진 것에 대한 소회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소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원하지 않던 삶에 자신을 우겨넣어야 했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이겠죠. (또한 작가는 자신이 학교를 그만둔다는 선택에 대해, 어떤 점에서는 아직 완전히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교를 떠나다>는 단지 탈학교라는 소재와 관련해서만 언급될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물론 크게 보면 학교로부터 벗어난 것이 관련되어 있을 수 있지만, 더 궁극적으로 작가가 겪어야 했던 많은 불안들과 고민들이 이 작품을 더 깊이 채우고 있습니다. 




불안과 무기력을 벗어나기, 또는 다루기


<학교를 떠나다>는 탈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의외로' 적습니다. 이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주로 1부에 등장하며, 2부부터 작품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피소드들은 작가 자신의 내면 및 상황에 대한 고찰입니다. 학교를 그만둔 뒤 끊임없이 불안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렸던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자기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고 관찰하고 스스로 달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학교를 그만두고 난 뒤 자신이 '부적응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빡빡한 계획표를 세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포기합니다. 나는 도피한 것일까?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해일처럼 밀려오는 이 질문들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작가는 끝없는 무기력과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시달려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감정들에서 한번에 빠져나오는 법은 없습니다. 매우 오랜 그리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난 끝에 조금씩 헤쳐나올 수 있을 뿐입니다. 그에 반해 다시 무기력에 침잠하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학교를 떠나다>는 이 불안에 어떻게 대처할 방법을 생각합니다. 상대방과 대화하며 고민을 털어놓기, "너는 잘하고 있어"라고 서로 계속해서 위로하고 북돋아주기, 할 수 있는 것을 천천히 찾아보기 - 내지는 뛰어들기, 맛있는 것 먹기, 소소한 취미거리 찾아보기 등등. 

그런데 이 작품을 읽던 독자들은, 비학생 청소년으로서 겪는 불안들이 놀랍게도 자신의 불안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자기증명과 자기계발의 압박은, 한병철의 표현을 빌리면 '피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개개인을 불면증의 밤으로 밀어넣습니다. 48화에 그려진 것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낭떠러지에서 발로 밀려떨어지고, 다시 올라가고, 또 밀려떨어지는 반복적인 과정에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스스로 조금 더 일찍 떨어졌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고민은 단지 작가 자신만의 것은 아니며, 독자들이 자신 내면의 고민들을 살피고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때문에 이 작품은 단지 '탈학교'라는 소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논의범위를 갖고 있으며, 나아가 그만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종종 <학교를 떠나다>를 '힐링툰'으로 분류하는 글도 보았는데, 제 생각에 단지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며 '치유'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밝고 쾌활한 이야기보다는 어둡고 침침하며 무거운 소재들이 훨씬 많이 등장하니까요. 다만 잠시 멈춰선 채로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치유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독자들이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면, 작가는 아마 무척 기뻐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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