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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내용 스포일러 있습니다)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374970&no=1&weekday=



글/그림: 자유


시놉시스

우연히 역사학 연구자인 김우민과 룸메이트가 된 취준생 한세태. 취업 때문에 고민하던 그는 우민에 의해 여기저기 끌려다니게 된다. 한편, ‘얼룩말’이라는 발송자로부터 수상한 문자가 날아오기 시작하는데...


이 만화를 영상화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꽤 골치가 아플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얼룩말>의 전개는 다소 두서없습니다. 장소는 통통 튀고 등장인물도 난데없이 튀어나옵니다. 등장인물인 우민/세태, 마을/가을의 이야기는 옴니버스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따로 놉니다. 그리고 스토리는 짧아서, 떡밥을 회수하자마자 바로 끝나버립니다. 물론 그래서 나름의 완결성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네이버 웹툰에서 저는 이 만화를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아요. 우선 보다가 빵 터지게 되는 개그가 너무 좋습니다. 그 개그감은 <인챈트-나람이야기>에서도 죽지 않았지요.  둘째, 주제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어떻게 보면 단순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은?” 이 질문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되는 것인지, ‘하고 싶은 것’이라는 게 대체 뭔지, 등등. 이 모든 함축적인 고민들을,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계속해서 늘어놓고 이야기하고 더 깊이 고민합니다. 이 고민이야말로 <얼룩말>을 정말 매력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될까?


이 문제의식 때문에 고민하는 두 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주인공 한세태, 그리고 그 옆방의 인물 백마을입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얽힐 것처럼 나오지만 별 것 없으니 기대를 접는 게 좋습니다. 이 작품의 로맨스는 몽골 사막에 떨어진 씨앗만큼이나 희망이 없습니다.

작품 후반부에 언급되듯이, '얼룩말'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존재들을 상징합니다. 얼룩말은 속박시키면 곧바로 스트레스 때문에 죽어버리기 때문에,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이죠.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인간인 우리들에게는 어떤 삶일까요?




백마을은 김밥천국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남들과 친화력 있는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위장이고, 그녀의 성격은 무척 제멋대로에 직설적입니다. 어떤 경험 이후 그녀는 자신의 성격을 숨기고 살기 시작했고 그게 더 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계속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그게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더 편하게 살려고 참으며 살아가는데, 그게 더 불편하고 힘들어졌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기로 마음먹습니다.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자기 생각을 더 숨기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백마을의 역설은 내성적인 사람들이 종종 겪는 문제일 겁니다. 지인과 마찰이 생기는 게 싫어서 참기 시작했는데, 그 참는 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가 오는 상황 말이지요. 백마을은 현명하게도 자신이 그런 한계지점에 왔다는 걸 자각하고는, 곧바로 자신의 태도를 바꿉니다. 불행히도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런 자각에 실패하고, 그래서 폭발하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곤 합니다. 물론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는 없을 테지요.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빨리 찾고, 그렇게 자신에게 숨통을 틔워주지 않으면 우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져버릴지도 모릅니다.



한세태는 정말 오늘날의 세태를 반영한 인물입니다. 그는 취준생이고 계속해서 취직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세태는 우민처럼 하고 싶은 걸 하는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자신은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 고민합니다. 영어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특출나게 잘하는 게 있지도 않습니다. 하고 싶은 걸 찾는 중이라는 말을 꺼냈다가, 그런 고민은 대학생 때 끝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핀잔이나 듣습니다. 참 잔인한 말입니다. 우리는 늘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조언을 듣지만, 정작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을 기회는 별로 없었으니까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남들이 강요해서 스스로에게 주입하게 된 것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더욱이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 없다는 상황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나아가서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는 순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게 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은 취미로 남기고, 일은 그저 일인 채로 남겨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말처럼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게 됩니다.


인문학 여행 혹은 대화


깊이 고민해 본 사람들은, 생각이 빙빙 맴도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거에요. 한세태의 고민처럼 뚜렷한 답이 없는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나아가질 못하고 계속 빙빙 돌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뭘까요?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라고 조언합니다. 혹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유흥을 즐기라고도 하지요. 전 이럴 때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빙빙 맴돌 때, 그 세밀한 고민의 지점들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고 듣는 경험이 필요한 것이죠. <얼룩말>에서 이 대화 상대자의 역할은 김우민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우민은 역사학 전공자입니다. (후속작인 <인챈트-나람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인문학 분야 종사자가 등장인물로 등장합니다. 아마 작가 본인이 인문학 전공을 하셨거나 개인적으로 꽤 깊이있게 공부하셨으리라 추측해봅니다.) 그는 1화에서부터 주체적으로 행위한다는 것에 대해 진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깊은 첫인상을 드러냅니다. 우민은 그리 붙임성있는 성격도 아니고 재미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가 재미있어 하는 건 박물관이나 역사유적 등이고, 그래서 얼떨결에 함께 딸려온 세태는 지루해 죽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이 얼떨결에 다니게 된 여행에서 우민은 세태가 전혀 해보지 못한 생각들을 던져줍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선택을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뭘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등. 물론 우민과 대화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쉽게 답을 내 줄 수 있었다면, 늘 인문학자들이 말하듯이, 인문학자들 스스로가 훨씬 잘 살고 있었겠지요. 세태도 늘 원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세태는 결국 결정을 내립니다. 그 결정은 ‘얼룩말’이 원했던 것이었고, 그래서 만화는 잠정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태가 내린 그 결정 자체, 내지는 그 방향이 아니라, 그 결정에 이르게 된 행동들과 고민들이겠지요. 여기에는 우민과의 대화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아니면 7화의 가을이 에피소드의 대사처럼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도 많”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세태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기로 합니다. 


소결


이 작품의 결말은 깔끔하기도 하고 너무 열려있기도 하며 황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얼룩말’의 정체는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2화에서 여민이 세태에게 건낸 이야기가 조금 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메시지는 여전히 호소력이 있습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더 오랫동안 보지 못해 아쉬웠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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