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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내용 스포일러 있습니다)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37661


글/그림: 이윤희


시놉시스

옛 추억과의 우연한 재회, 그리고 예기치 못한 동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요? 외모 때문에, 성격이 좋아서, 피아노 치는 모습이 멋져서, 등등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요인들은 사실 온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외모가 출중하다는 것이 좋아한다는 것의 직접적인 인과는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단지 ‘잘생겼다’ ‘예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잘생긴 사람과 예쁜 사람이 좋아하는 대상이 될 것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잘생기거나 예쁘면 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때의 좋아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연인 간 개인과 개인 사이의 깊은 친밀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정말로 외모가 출중한 사람을 모두 동등하게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에는 이르지 못할 겁니다) 이러한 설명은 성격이 좋음, 멋짐, 등의 개인적 특성 모두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로맨스물, 즉 사랑을 다루는 영화나 만화, 소설에서 핵심은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연인인 A와 B는 어떤 사건을 겪었는가? 어떤 기억들을 공유하는가? 등등. 물론 이 문제들을 아예 건너뛰고 다른 문제(감정의 변화 등)에 더 집중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사랑의 형성과정에 대해 충분히 공을 들여 보여주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본질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도대체 미스터리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이하 <우리 집>으로 축약)는 로맨스 코미디로서 가장 모범적인 답안을 보여줍니다. 로맨스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매우 정성들여 묘사하는 이윤희 작가님의 노력은 (그리고 놀라운 유머감각은) 독자들을 휘어잡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때 ‘모범적’이라는 것은, 연애물로서의 탁월함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인물 설정 측면에서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이 리뷰는 작품에서 로맨스의 전개과정이 어떤 문법을 따랐는지를 적어보려 합니다.


로맨스의 보조장치들


<우리 집>은 인물들을 한 집에 몰아넣으며 시작합니다. 오랜 지인의 아들 류연이 한국에 유학을 오면서 재희와 뜬금없이 하우스메이트가 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연애물 장르에서 흔히 발견되며, 특히 만화에서 즐겨 사용하는 설정입니다.  

연애를 시작할 때, 혹은 시작한 뒤,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 없이 대상과 가까워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로맨스물들은 일종의 보조장치를 사용합니다. 대상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 또는 가까워질 수 있는 매개체를 설정해두는 것이죠. 이 점에서 가장 편한 배경은 학교나 직장입니다. 학교나 회사에 다니는 이상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와 유사한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설정은 어릴 때부터의 친밀한 친구 내지 이웃 관계입니다. 최근 작품들에 자주 발견되는 설정은 같은/근거리의 생활공간을 공유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하우스메이트가 되거나, 옆집 이웃이어서 자주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배경 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보조장치는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 집>의 경우, 서로 이름밖에 모르는 성인 남녀가 한 집에 같이 산다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요? 물론 재희의 어린 시절 추억이라는 계기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부자연스러움을 넘어서기에는 불충분합니다. 당연히 사람들이 친해지려면 어떤 사건들을 겪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그 사건이란 도대체 뭘까요? 사람들이 단지 자주 접촉하게 되는 것을 넘어, 친해지게 만드는 사건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이를 통해 도달해야 하는 친밀성의 정도는 어느 정도일까요?


연애: ‘너’여야만 하는 이유


근대적인 연애의 문법은 상대를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간주하도록 요구합니다. 물론 이 문법은 매우 낡은 것으로 취급당하며, 매우 새로운 형식의 연애 역시 등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낭만적 사랑의 문법은 여전히 친밀성 관계의 근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문법을 <우리 집>에 대입해 보면,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어떻게 두 주인공이 대체되기 힘든 위치로 자리매김하게 되는지입니다.


재희와 류연의 로맨스 서사는, 두 사람이 서로 의존하고 지지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일견 각자 자신의 생활을 알아서 잘 꾸려나갈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독립심 강하고 다재다능한 주인공들은 별로 누구에게 의존하지도 않고 의존하지도 않은 채 살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재희가 혼자살이에 익숙해졌다는 것이 결코 완전한 삶의 상태를 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재희는 회사 생활 및 그 주변에서 겪는 숱한 짜증스러운 경험들(퇴근시간 후 업무지시나 잦은 야근, 성희롱성 언사, 이성 직원과의 사내 소문, 하다못해 늦잠자서 택시를 타고 출근하기만 해도 겪는 불쾌한 상황) 속에서 가장된 자아를 내세우며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는 중입니다. 류연은 위태로웠던 재희를 넘어지지 않게 뒤에서 잡아줍니다.(물론 늘 성공적이진 않습니다) 류연 역시 강한 생활력을 지닌 캐릭터지만, 재희를 통해 사회적으로 미숙했던 자신을 배우며, 나아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발견합니다. 처음 류연이 집에 왔을 때 불편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던 재희는, 나중에는 류연이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기가 힘들어서 펑펑 울고 맙니다. 류연은 재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며 바뀌고 또 그 변화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위의 설명은 다소 기능적입니다. 서로 필요로 했던 것을 보완해줌으로써 연애감정이 생겼다는 설명이지요. 많은 경우 연애는 이런 식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냥 ‘꽂히는’ 체험이 대부분 로맨스의 시작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꽂히는’ 순간이 대체 어떻게 생겨나는지의 문제인데,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가령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반한 순간은, 로테가 아이들에게 빵을 썰어주는 장면을 베르테르가 목격했을 때입니다. <우리 집>의 류연이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는 순간은, 재희에게 거지닭 요리를 해 주던 중이었습니다. (반면 재희는 작품의 후반부에서야 류연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요컨대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은 연애의 시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내지 조건이지, 연애 자체의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꽂히는’ 감정적 체험의 순간보다, 그에 앞서 친밀해지는 과정도 그만큼 연애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우리 집>의 로맨스는 그만큼 긴 시간과 과정에 걸쳐 전개되고 있습니다. 류연이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는 것은 작품 전개의 절반을 넘어선 뒤며, 고백하는 것은 2/3 부분, 그리고 그에 대한 재희의 대답은 결말 부분에서 이뤄집니다. 재희는 갑자기 훈남이 되어버린 류연을 보며 ‘내가 쟤를 좋아하나?’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왠지 어색하다고만 느낍니다. 류연 역시 재희를 보며 피식피식 웃는 자신을 생소하게 느끼다가, 어느 순간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습니다. 상대를 대체불가능한 소중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그리고 그에 걸맞은 감정과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과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성찰해보는 과정도 요구되지요. <우리 집>의 로맨스 전개를 부드럽고 잔잔하게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설정을 비교적 충실히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류연의 설정이었을 것입니다. 서재희가 ‘엄친딸’인 것 못지않게, 류연 역시 엄청난 ‘엄친아’입니다. 그는 가사에 능하고, 깔끔하며 직설적인 성격에, ‘남자들의 시시껄렁한 농담’을 극도로 싫어하며, 배려심깊은 순정파입니다. 이런 캐릭터는 한국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 격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 남성상과 거리가 멀고, 그래서 서재희와 합이 맞는 연애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단지 누가 누구를 리드하는 게 아니라, 손잡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말이지요.(물론 작품 마지막 부분에서는 서재희의 무척 박력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소결


만약 다른 만화에서 <우리 집>의 소재 및 설정들을 사용했다면, 이 작품은 전혀 다른 방식의 전개로 흘러갔을지도 모릅니다. 우선 재희는 같은 회사의 유 과장에 대한 존경-선망의 마음이 있습니다. 재희는 주변 사람들에게 (심지어 류연에게도) 유 과장을 좋아하는 마음을 딱히 숨기지 않기 때문에, 초반부 독자들은 애정 관계도가 어떻게 될 것인지 마음 졸이며 보게 됩니다. 독자들을 더욱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류준의 등장입니다. 류준은 일종의 히든 카드인데, 서재희가 지닌 추억의 핵심부에 위치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스토리를 좀 더 꼬았더라면 연애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의 전개는 이런 제3자 요소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립니다. 유 과장도, 류준도 (그리고 중간에 난입한 아이링도) 연애전선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 중점을 두고 싶었던 부분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측면입니다. 만약 이들까지 연애 지형에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면 연애의 서사는 훨씬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며, 그 결과 이만큼 풍부하고 다정한 로맨스로 전개되기는 어려웠겠지요. 여기에서 이 작품이 택한 연애적 서사의 선택과 집중이 잘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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