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그림: 우현 집은 사적인 영역이다. 누구나 접근가능한 공적인 영역과 달리, 사적 영역은 그 내부가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는 곳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집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다른 관계들과 구분되는 고유한 친밀성을 지닐 가능성을 갖지만, 뒤집어 말하면 사적 영역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집이란 외부로부터 폐쇄적이고 고립되기 쉬운 영역이 된다. 많은 가정에서 은폐된 폭력과 학대가 자행되어도 외부인들은 그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알더라도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하려 해도 (사적 자율성의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집이라는 공간은 마음대로 벗어날 수는 없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은 마냥 공적인 존재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식적인 관계에서 요구되는 가면을 내려놓..
임신한 시민의 자리는 어디인가: 가 던지는 사회적 고발장 쇼쇼 작가는 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만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엄마도 사람이다”였다고. 이 호소는, 바꿔 말하면, 한국 사회는 임신한 여성 시민을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에서 나는 암묵적인 두 가지 답변을 읽어내고자 한다. 첫째로, 누군가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결정을 내릴 때, 그는 온전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둘째, 그를 둘러싼 공동체 안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쇼쇼 작가의 호소에 따르면 이 규정들은 임신한 시민들에 대해 적용되지 않는다. 즉 는 임신 이후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임과 동시에, 임신과 함께 갑자기 2등 시민으로 격하된 자..
꼬마비 작가는 하나의 사태를 가정하고 현실 맥락에서 밀어붙이는 전개를 보여준다. 이것은 주인공이 눈앞에 닥친 재앙에 대처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재난물과는 다르다. 누구와 섹스를 했는지 모두가 알 수 있게 되거나(),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 관광 중이던 한국인들이 난민이 되는 상황()에서 초점은 개별 인물을 넘어 사회 전체를 향한다. 신작 에서도 꼬마비 작가는 흥미로운 가정을 던진다. 전지전능한 문자 그대로의 신이 이 세상에 강림한다. 이 하나의 사태만으로 인간 사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인간들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그리고 구체적으로 신에 의해 무엇이 바뀌게 될 것인가? 이원론적 도식의 붕괴: 축복 또는 재앙 ‘신의 세계’를 상정하는 세계관은 늘 다음과 같은 이원론적 도식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