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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내용 스포일러 있습니다)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495498&no=1&weekday=thu


글: 마사토끼

그림: joana


시놉시스

우등생 백희지는 수능 당일 불행한 사건으로 수능을 놓치고 재수를 시작한다. 모든 모의고사에서 0점을 받기로 유명한 임수영은 희지에게 컨닝으로 함께 수능 만점을 도전해볼 것을 제안한다. 





마사토끼 작가의 특징은 자신의 독특한 문제제기 및 설정을 매우 힘 있게 밀고 간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양가성이 있습니다. 이 출발점이 개연적이고 매력적인 경우 만화의 흡입력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설정이 너무 작위적일 경우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위험도 공존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계 최강자 시리즈’는 후자였다면, 마사토끼 작가의 힘을 잘 보여준 작품으로는 <빵점동맹>을 꼽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가?


이 만화에서 던져지는 핵심 질문은 “우리는 왜 학교공부를 해야 하는가?”입니다. 이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소소한 즐거움들을 포기한 채 좁은 학교에 갇혀 오랜 시간을 투자해가며 학교 공부를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무슨 쓸모와 가치가 있길래? 마사 작가는 이 질문을 임수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재수를 시작한 백희지는 난데없이 부정행위로 만점을 받겠다는 임수영과의 대화에서 이 질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간단한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희지가 먼저 제시하는 답변은, “공부는 미래를 보장하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희지의 생각에 학교공부는 제도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실현하기 위한 기회가 제공받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임수영은 “정말 멍청한 생각”이라며 코웃음을 칩니다. 만약 출세를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라면, 정말 필요한 것은 공부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로서의 점수뿐이니까요. 따라서 들키지만 않는다면 부정행위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훨씬 좋은 전략입니다. 아니, 수영의 생각에 오히려 국가는 부정행위를 장려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희지는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궤변이라고 생각했던 수영의 말에 조금씩 끌려가는 자신을 발견하며, 결국 궁지에 몰린 희지의 대답은 “그냥 하는 거야”입니다. 사실 가장 솔직한 대답입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냥 시키니까 하는 거죠. 그리고 열심히 하면 보상이 따라올 뿐.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작품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꽤 깊이있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제3자인 기철의 입을 통해서요. 희지와 수영이 다니게 된 학원에서, 학원 강사 기철과 대화하게 된 수영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들을 듣게 됩니다. 공부의 내용 자체는 꼭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교과 과정에서 공부하게 되는 내용들은 쓸모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게 기철의 생각입니다. 그냥 사회가 배우라고 요구할 뿐이죠. 다만 대체로 그 지식들은 일반적이고 기초적인 것들이어서 쓸모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 그리고 이 교육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통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기철의 요지입니다. 교육내용이 쓸모없다는 전제 하에서 생각을 펼쳐왔던 수영은 기철과의 대화에서 다소 놀라게 되죠. 물론 그렇다고 컨닝 계획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강사 기철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 저 생각이 조안나 작가의 것인지 아니면 마사토끼 작가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공부의 이유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까지의 과정은 대체로 기초지식을 배우며, 그 과정까지만 마쳐도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완전하게까지는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겠지요. 가령 대통령 선거의 의미라든지, 혹은 유전자 복제 등의 복잡한 이슈에 대해서 이 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친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의 실마리를 갖습니다. 그리하여 사회 구성원인 ‘시민’으로서의 접근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이지요. 다른 한편으로, 그렇다고 지식 일반이 모두 직접적인 쓸모가 있기 때문에만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며 배우는 지식 뿐만 아니라, 쓸모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지식도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이런 지식은 대체로 중고등학교 과정 이상에서 배우게 되는 내용에서부터 적용되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물론 기철은 이렇게 얘기한 뒤 한 발짝 뒤로 물러섭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일 뿐, 정답은 아니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뒤에도 수영과 희지의 고민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끝날 수 있는 고민이었다면, 전국에서 공부하는 수험생들이 그렇게 괴로워해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지도 않았겠지요.


공부와 운


앞서 언급된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 걸까"라는 문제는, 작품의 전개 속에서 한 가지 핵심적인 소재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운과 우연이라는 소재입니다. 사실 이 소재는 만화의 시작에서부터 던져져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백희지는, 전혀 생각지 못한 위급상황에 직면하여 어이없이 수능 자체를 놓치고 맙니다. 그리고 희지는 몇 날 며칠을 혼자 끙끙대며 앓습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해가며 공부했고, 그 성실성의 보상을 받기 일보직전이었는데, 왜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빠져 좌절하게 되었을까? 

사실 이런 생각은 희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기대합니다. 특히 학창 시절 공부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땀흘려 가며 공부한 사람들이 일정한 메리트를 얻을 수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는 입시제도의 근본적인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입시제도에서 이 대원칙에 대한 부정이 발견되면 크게 분노합니다. (심지어 얼마 전 한국에서는 정권이 뒤집어지는데 이 부정이 크게 일조하기도 했죠.) 그리고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를 보존하고 싶어합니다. 가족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등에 의해 모든 것이 미리 결정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희지의 경우는 어떨까요. 수능 당일의 불운이 3년, 아니 더 길게는 12년 동안의 기나긴 노력을 부정해 버렸습니다. 하필 희지 옆에서 응급환자가 생겼고, 희지 외엔 아무도 그 환자를 돌봐주지 않았고, 몇 분 늦은 수험장에서는 희지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희지는 수험장에 자신이 입실하지 못한 것을 원칙의 문제였다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었다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우연한 사건으로 그 수험장의 감독관을 재회하게 되고, 그가 딱히 어떤 원칙주의자가 아니라 그저 변덕을 부렸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은 희지는 다시 방에 혼자 처박혀 버립니다. 그런 변덕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뒤흔들어 버렸다는 것을, 희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은 희지가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이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해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희지는 공부를 했던 이유가 사실 “무서워서”였다고 고백합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둔 틀 안에서 노력하기만 하면 평탄한 성공으로 향할 수 있다는 공식, 그 도식을 벗어나는 것은 혼란으로 들어가는 거였죠. 그리고 타인의 변덕이 자신의 삶을 흔들어 버린 순간, 희지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잃어버린 건 “시험을 칠 기회가 아니라, 무서운 삶을 상상하지 않고 안심하며 살 수 있는 권리”였다는 사실을.

방안에 틀어박혀 버린 희지를 만나러 온 수영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몰랐던 부분을 자각합니다. 수영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운과 우연 앞에 사람들은 얼마나 쉽게 노출되어 있으며, 또 그에 얼마나 휘둘리며 살아가는지. 그 사실을 깨달은 수영은 자신 나름대로 희지를 도울 방법을 찾아내고, 결국 의기소침했던 희지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한다, 는 원칙이 사실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허깨비같던 이상이 그 안에 매여 있었던 사람들에게 한 줌의 위로라도 주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깨달은 뒤 우연성만이 남게 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만화 <빵점동맹>은 그에 대해 명시적인 답을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수영의 행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요. 우리 앞의 문제들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만이 우리를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총평


그리 길지 않은 작품입니다. 반나절이면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내용도 그리 복잡하거나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부라는 문제에 관심있는 분들이 꼭 한 번씩 읽어보길 바랍니다. 제 직업은 교사가 아니지만, 제가 만약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에게 정주행하고 오는 과제를 내주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만화는 어떤 답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심지어 왜 컨닝을 하면 안 되는지도!) 딱히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저 생각할 거리를 던져놓습니다. 그 생각거리들을 가지고 많이 얘기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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