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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미울/BV

 

우유를 사서 귀가하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 남성, 집에서 밥을 차리는 여성, 교복을 입고 귀가한 학생, 그리고 집에서 식사를 돕는 꼬마. 정상가족의 형태에 익숙한 독자들은, <도령의 가족> 1화의 이 모습을 보며 은연중에 부-모-자녀들이라는 도식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모두 남매이다. <도령의 가족>은 초등학생인 막내 도령과 그 위 다섯 남매(화령, 재령, 미령, 보령, 세령)의 이야기다. 직장 근처에서 자취하는 첫째 화령과 대학 기숙사에 사는 셋째 보령을 제외하고는, 직장인 재령과 소설가 미령, 고등학생 세령과 초등학생 도령이 한 지붕 밑에서 서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간다. 이 이야기는 얼핏 보면 한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내는 재미있고 따뜻한 일기로 보인다. 그러나 훈훈한 로맨스와 감동적인 이야기들에 이끌려 작품을 끝까지 따라간 독자들은, 미울/BV 작가의 시선이 가족에 대한 심층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바로 ‘가족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가족의 시점

<도령의 가족>에는 중심이 되는 주인공이 없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시점이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또는 중심이 되는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잠시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다가도, 이는 곧 주변의 가족들과 함께 고민하게 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굳이 작품에서 중심적인 시점 내지 단위를 찾는다면, 그것은 ‘가족’이다. 어느 한 사람 대신, 가족 공동체의 시점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된다. 
가령 도령의 태권도장 발표회에 참여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 장면을 보자. 도령은 형과 누나들이 바빠서 오지 못하는 것에 속상해한다. 하지만 다섯째 세령은 막내동생에게만 관심을 쓰는 미령에게 섭섭함을 표하며, 미령은 미령대로 축하받을 자신의 상황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을 슬퍼하고, 재령은 자신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낸다. 독자들은 이 복잡한 상황에서 구성원 각자의 생각들을 차례로 접한다. 이 논의 속에서 독자는 단지 한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대신, 전체 관계 속에서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졌어야 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복합적인 시점을 작가들이 선택하는 이유 역시 작품 속에서 설명된다. 상황을 완전히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보여주는 화자는 작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개인은 현실의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하다. 늘 자신만만해 보이는 아나운서 화령도, 착한 순진남 재령도, 잘나가는 소설가 미령과 걱정없어 보이는 보령도, 항상 화난 것처럼 보이는 세령도, 형과 누나들의 보살핌 속에 살아가는 도령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픔과 결핍을 지닌 인물들이다. 그들은 때로 불합리하게 화를 내거나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한 개인의 시점에만 명쾌하게 의존할 수 없으며 복합적인 관점 속에서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애쓰게 된다.
그런데 이 설명이, 가족 전체의 관점에서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과 아픔을 무시한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도령의 가족>이 보여주는 것은 정확히 그와 반대되는 가족 형태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형태와 의미

도령네 가족의 형태는 조금 독특하다. 이 가족은 누군가가 아프면 그를 돌보기 위해, 혹은 새로운 구성원이 생겼을 때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유연하게 모양을 바꿔 왔다. 물론 그 변환이 매번 아무 탈 없이 부드럽게 이루어져 온 것은 아니었다. 구성원들은 그 변화된 모습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때로는 그로부터 생겨난 부담 때문에 아슬아슬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갈등을 해소하며 이들은 관계를 이어나간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 속에서도 도령과 주변 인물들이 계속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는 것은, 그저 옆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 및 상대의 불완전성을 자각하고 이를 메우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요양을 위해 자리를 비운 집에서 도령의 남매들은 그 빈 자리를 함께 채운다. 발표회에 와 달라는 도령의 요청에 응답하려 뒤늦게 뛰어가거나, 함께 명절을 보내기 위해 집에 모이는 방식으로. 
뒤집어 말하면, 단지 일반적인 형태를 갖거나 혈연으로 이어지는 것만으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시각이기도 하다. 재령의 중학교 동기 도욱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형태로만 따지면 매우 정상적인 형태의 가족을 가졌던 도욱이지만, 불행히도 그 안에서는 누구도 서로를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부모를 사실상 남으로 취급하며 살아왔고, 이는 그가 제도 속의 정상가족 관계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가 된다. 언제 결혼할 거냐는 세령의 물음에 화령과 도욱이 대답하듯이, 가족을 이루는 것의 의미는 어떤 고정된 관계나 테두리로 묶여 있는지가 아니다. 핵심은 그 테두리 자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도령의 가족>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의 일정한 형태나 이름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작중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어딘가 아픔과 결핍을 가진 존재이며, 그 문제들은 종종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때마다 구성원들은 가족이라는 외피를 유지하기 위해 허울좋은 ‘책임’이나 ‘정’ 같은 개념으로 서로 얽어매고 부담을 주는 대신, 구성원의 개별 아픔을 존중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렇기에 가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던 이들조차 때로 예상치 못하게 집을 나가거나,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가족 속으로 편입되기도 한다. 미령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서로 좀 더 잘해가기 위한, 나아지기 위한” “굉장히 전략적”인 선택들을 수행한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 그들은 자신과 서로를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선다. 

 


결론

이 작품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도욱이 혈연관계 중 유일하게 진정한 가족으로 생각했던 도욱의 고모가 남긴 유언으로 정리될 수 있다. “가족은 태어날 때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네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갈 수도 있어.” 가족의 형태가 바뀌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과거의 관계를 끊는 것은 “내 마음대로 안 될 수 있고, 다시 속상할 수도 있지만,” 그 힘든 길의 끝에 행복한 관계가 생겨날 거라고 믿으며 사람들은 타인과 함께 관계를 그려나가기로 결심한다.
<도령의 가족>은 가족의 형태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우리가 그 속에서 어떤 관계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 점에서 김태용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의 테마에 가깝다. 그러한 가족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는, 가족이 위치한 사회적 현실을 예리하게 파악하는 감수성과 동시에 새로운 관계의 양태를 그려내는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물론 <도령의 가족>에 등장하는 관계들은 여전히 이성애중심적 혈연관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점에서만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묘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개인들이 서로 맺는 관계의 양태는 그 구성원들을 위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때로는 혈연을 벗어나는 관계가 필요할 수도 있음을 <도령의 가족>은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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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주최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자유평론 제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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